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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복구정보/IT NEWS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21

by CBL 2018. 7. 19.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트, 폴 앨런





Episode 21. 그들만의 리그

1985년 스티브 잡스를 떠나보낸 애플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살얼음판을 걷기 시작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갖고 추진한 매킨토시 컴퓨터는 스티브 잡스의 몰락과 함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고, 애플사의 자금 흐름에 열쇠를 쥔 애플 시리즈들은 더 이상 사용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MS사의 도스 운영체제와 인텔사의 X86 시리즈 프로세서가 엔드 유저들에게 부동의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애플사의 딜레마는 처참했다. 불과 5년 전 혜성처럼 나타나 PC 시장을 창출해낸 워즈니악의 애플 시리즈들은 더 이상 IBM PC 클론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구식 컴퓨터로 전락했고, 새로운 미래를 기약했던 매킨토시는 현실을 초월해 버린 황당한 컴퓨터로 인식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우리가 한다", "여기서 발명되지 않은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는 식의 독선적인 애플의 태도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실리콘 밸리에서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굳혀갔을 뿐이었다. 당시 애플을 일컫어 "얼터너티브"적인 회사라고 했는데, 사실 이 표현은 너무나 관대한 것이었다. 마우스와 풀다운 메뉴 방식의 환상적인 인터페이스는 아닐지라도, 실리콘 밸리의 PC 클론들은 대부분의 엔드 유저들을 만족시켰고, 또 도스를 축으로 불붙기 시작한 사무자동화(Office Automation)의 붐은 전문 PC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기 충분했다. 즉, 수직적으로는 메인프레임, 중형 워크스테이션, 엔드 유저 플랫폼의 PC 시장으로, 수평적으로는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 주변기기 시장으로 확산되면서 매우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먹이사슬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PC 시장의 대중화에 도화선이 된 미치 카포의 '로터스 1-2-3' 스프레드시트를 시작으로 운영체제와 랭귀지(베이식, 파스칼, 포트란, C 등) 시장은 MS사가 부동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SQL(Structured Query Language) 언어를 기반으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시장을 구축한 오라클(Oracle)사, 이더넷 테크놀로지의 장점을 살려 서버와 클라이언트 체계의 LAN을 보편화시킨 노벨(Novell)사, 네트워크간의 데이터 체계를 연결시키는 라우터(Router) 테크놀로지로 인터-네트워킹 시장을 탄생시킨 시스코(Cisco)사 그리고 포스트스크립트라 불리는 마법의 서체 언어로 전자출판 시장을 석권한 어도비(Adobe)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80년대 중반 PC 시장에서 독창성과 전문성을 주체로 내세운 '그들만의 리그'를 탄생시켜 버렸다. 또한 RISC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엔드 유저 플랫폼의 서버 역할을 담당한 유닉스(UNIX) 운영체제는 실리콘그래픽스사에게 비주얼 그래픽 시장을 새롭게 열어주었고, 할리우드 영화의 생동감 넘치는 특수효과를 가능케 했으며, 썬(SUN, Stanford University Network)사의 유닉스 기반 운영체제 솔라리스(Solaris)는 네트워크 시장에서 부동의 서버로 자리잡으면서 인터넷의 빅뱅으로 실리콘 밸리가 또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씨스코사와 함께 인터넷과 인트라넷 서버 네트웍스 시장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서 '그들만의 리그'는 완숙기에 접어드는 실리콘 밸리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즉, '윈텔과 안티-윈텔' 진영의 힘의 균형을 조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이들 리그의 파워가 나날이 커지게 됨에 따라, 스핀오프되는 테크놀로지 회사들의 가치가 종종 이들이 속해 있는 리그의 규모나 가능성, 팬(유저)들의 기대치에 의해 판가름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90년대 중반 인터넷의 빅뱅으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실제 가치를 측정하는 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디지털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좀 더 직설적으로 다우 종합 주가 지수를 '꿈의 일만 포인트'로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이 더 이상 생상력과 품질관리가 전부일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나아가 그러한 시각에서 투자자들을 '블루 칩' 시장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실리콘 밸리에서 한 회사가 '그들만의 리그'를 창출하려면, 소위 말하는 데이빗 리카도(David Ricardo)의 두 가지 재능이 있어야 한다. 데이빗 리카도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독학생이었지만, 천재적인 경제학 이론으로 물질 문명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켜 백만장자가 된, 매우 보기 드문 학자 겸 사업가이다. 마샬(Marshall)과 케인스(Keynes)가 천재적인 경제학자였다면, 리카도는 천재적인 경제학자인 동시에 뛰어난 장사꾼이었다. 실리콘 밸리는 바로 이러한 데이빗 리카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곳이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천재적인 비전을 보여주어야 하고, 이 비전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장사꾼 기질이 있어야 한다. 즉, 무어의 법칙에 의해 18개월을 주기로 모든 것이 두 배로 가속화되는 밸리의 변경에서, 벤처리스트들은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상업화시킬 수 있는 장사꾼 기질을 입증해야만 했다. 밥 노이스와 빌 게이츠는 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춘 경우이고, 쇼클리와 킬달은 두 요소 중 후자가 없었기에 '그들만의 리그'를 창출하지 못한 경우이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를 통해 형성된 '그들만의 리그'의 진정한 실체는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는 독창성이라기 보다는 한번 플레이그라운드가 형성되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면역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그들만의 팬들'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바꿔 말 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훔쳐가도 시장을 훔쳐갈 수 없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들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정보 서비스라 불리는 세 가지 영역 중 하나를 택해 자신들이 실리콘 밸리의 '최고'이기보다는 '최다'임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인텔과 MS는 각각 세계 최다의 마이크로프로세서(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산업체이며, 오라클은 세계 최다의 데이터베이스 정보 서비스 업체이다. 물론 최다가 결코 최고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리콘 밸리의 변경을 좌지우지한 대부분의 테크놀로지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윈텔 제국'이 아닌 '안티-윈텔' 진영의 끝없는 방황에서 사고 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기본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지는 법이고, 실리콘 밸리에서는 철저한 분업이 원칙이다. 밸리는 구조적으로 모든 방면에 뛰어난 팔방미인이 생존하기에는 너무나 치열한 먹이사슬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극단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을 거부한다. 이 분업의 절대 원칙은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을 서로 연대시켜 연합체제를 형성시키거나, 그 반대로 이들을 경쟁시켜 대결구도로 이끌게 된다. 세분화된 분업체계를 무시하면 그 기업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밸리는 역사를 통해 증명해왔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한 가지 이상의 신분증을 지닐 수가 없다. 지난 20년간 밸리는 최고의 상품과 엔지니어들을 헌 신짝처럼 내팽개쳐 왔고, IBM의 'The PC'의 출현은 독창성과 전문성을 방어막으로 내세운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것이 또 다른 아마겟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는 교훈을 밸리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나 혁명을 통해 모든 것이 새로운 질서를 잡아갈 무렵이면, 어느 곳에도 융화될 수 없는 조직과 인물이 등장하곤 했다. '그들만의 리그'란 대세가 실리콘 밸리의 모든 영역을 파티션해 나가는 80년대 중반 모든 컴퓨터 회사들이 이 새로운 흐름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올라간 대표적인 기업은 빅 블루 IBM과 영원한 밸리의 반항아 애플사였다. 특히 8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이어진 애플사의 무모한 '나 홀로 프로젝트'들은 '자멸'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90년대 초반 '그들만의 리그'가 독보적인 네티즌 제국으로 승화될 무렵 자신의 초라한 실체를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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